[과학 감수]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이유는? 회양목 빗은 플라스틱 빗의 약 1/10! 정전기의 비밀
사이언스 트레이너 구와코 켄입니다. 매일이 실험!
겨울철 건조한 날, 플라스틱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 버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정말 성가신 정전기입니다. 그런데 빗의 종류에 따라 이 불쾌한 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안 생기기도 하는 건 왜일까요? 사실 얼마 전 이 소박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니혼TV의 인기 프로그램 「일격해명 버라이어티 한눈에 알 수 있다!!」 제작팀으로부터 과학적인 조언을 요청받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TV 프로그램 제작 뒷이야기와 함께, 머리카락과 빗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전기의 미시 세계 수수께끼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방송국의 SOS! “장마철이라 정전기가 안 생겨요…”
제작팀의 의뢰 내용은 “회양목 빗과 일반 플라스틱 빗 사이에 정전기 발생 정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검증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촬영 시기가 장마철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습도가 높으면 정전기가 금방 공기 중의 수분으로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실험이 잘 안 돼서 난감하다”고 하셨죠.

그래서 제 개인 소유 ‘디지털 정전기 탐지기’를 빌려드리고, 머리를 빗은 직후 금방 사라지는 전기를 재빨리 포착하는 요령 등을 알려드렸습니다. 습기가 많아도 방법만 잘 찾으면 정전기를 ‘눈에 보이게’ 만들 수 있거든요.
빗 재질에 따라 왜 이렇게 다를까? 과학의 잣대 ‘대전열’
자, 지금부터가 과학의 본론입니다. 플라스틱 빗에서는 정전기가 잘 생기는데, 나무나 ‘회양목’ 빗에서는 왜 잘 안 생길까요? 그 비밀은 ‘대전열(帶電列)’이라는, 물질이 지닌 전기적 성질의 순서표에 숨어 있습니다.
물질끼리 문지르면 한쪽은 플러스(+), 다른 한쪽은 마이너스(-)로 대전됩니다. 이때 ‘어느 쪽이 되기 쉬운가’를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이 바로 대전열입니다.
플러스가 되기 쉬움 ←― 아크릴, 머리카락, 목재, …, 면, …, 폴리에스터, 플라스틱 ―→ 마이너스가 되기 쉬움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전열에서 위치가 멀리 떨어진 물질끼리일수록 더 큰 정전기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카락은 비교적 플러스 쪽에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한참 떨어진 마이너스 쪽에 있죠. 다시 말해 머리카락(+)과 플라스틱(-)은 전기적 줄다리기를 하는 라이벌 사이인 셈입니다. 서로 문지르면 전자(마이너스 전기)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어마어마한 정전기가 생겨 버립니다. 이때 전자는 머리카락에서 빗으로 이동합니다. 머리카락은 플러스로, 빗은 마이너스로 대전되는 거죠.
그에 비해 목재(회양목)는 머리카락과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의 이동이 얌전하고, 발생하는 정전기도 훨씬 적은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도 사실 같은 이유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모두 같은 플러스 전기를 띠면 서로 밀어내면서 부풀어 오르고 퍼져 버리거든요.
충격적인 측정 결과! 회양목 빗의 실력은?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측정한 결과는 이 과학 법칙을 멋지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플라스틱 빗: 약 20,000볼트
나무 빗: 약 8,000볼트
회양목 빗: 약 1,000~2,000볼트
놀랍게도 회양목 빗은 플라스틱 빗의 약 10분의 1밖에 정전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나무 빗보다도 정전기가 덜 생기는 건, 회양목이 지닌 적당한 기름기와 수분이 전기를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제 정전기 측정기의 활약 장면은 방송에서 편집되어 버렸지만(웃음), 옛사람들의 지혜인 ‘회양목 빗’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는지 보여 준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참고로 장마철에 제 아내의 머리를 플라스틱 빗으로 빗어 봤더니 4,000볼트의 정전기가 측정되었습니다. 습기가 많아도 조건만 맞으면 정전기는 제대로 생기고 있었던 거죠.


20,000볼트인데 왜 감전되지 않을까?
‘20,000볼트’라고 하면 위험할 것 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에 영향이 갈 만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전기는 전압은 높아도 흐르는 전기의 양이 아주 적고, 순식간에 끝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짜릿!’ 하더라도 깜짝 놀라는 정도로 끝나는 거죠.
참고로 여름 하늘을 가르는 번개도 구름 속에서 얼음 알갱이 등이 서로 부딪히고 문질러지면서 생기는 정전기의 친구입니다. 머리카락과 빗에서 일어나는 지직거림도, 번개도 ‘문질러서 전기가 쌓이다가 한꺼번에 흐른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원리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빗질할 때 튀는 작은 불꽃이 왠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정전기와 잘 지내는 요령
여러분도 빗을 고를 때 이 ‘대전열’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일상 속 작은 선택이 과학 지식 덕분에 더 풍성해질지도 모릅니다.
또 정전기는 습도가 낮을수록 잘 빠져나가지 못하니, 겨울에는 방을 가습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머리카락이 잘 부풀어 오르는 날에는 회양목 빗이나 나무 빗을 써 보세요. 옛사람들이 나무 빗을 소중히 여겼던 이유도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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