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 상승이 멈춘다?! 팔미트산과 함께 떠나는 ‘잠열(潛熱)’의 신비한 세계 (상태 변화・녹는점)

사이언스 트레이너 쿠와코 켄입니다. 매일이 실험이죠!

초콜릿이 손바닥에서 사르르 녹고, 물을 냉동실에 넣으면 돌덩이 같은 얼음이 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물질이 모습을 바꾸는 **’상태 변화’**가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말이죠, 혹시 그 변화가 한창 일어나는 동안 물질의 **’온도’**는 어떻게 되는지 유심히 관찰해 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그 속에는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과학 드라마가 숨어 있답니다! 이번 시간에는 과학 실험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팔미트산(Palmitic Acid)’**이라는 물질을 주인공으로 삼아, 신비로운 온도 변화의 세계를 탐험해 봅시다!

‘팔미트산’은 대체 정체가 뭘까요?
‘팔미트산’이라는 이름,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사실 이 물질은 우리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팔미트산은 ‘지방산’이라는 영양소의 일종으로, 이름처럼 팜유(아브라야자 나무에서 채취한 기름)의 주성분이에요. 우리가 평소에 먹는 가공식품, 몸을 씻는 비누, 화장품 등 아주 다양한 곳에 포함되어 있죠. 상온에서는 버터처럼 하얀 고체 상태이지만, 열을 가하면 투명한 액체로 변하는 재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학적으로는 이런 모습(화학 구조식)을 하고 있어요. 탄소(C) 원자가 줄줄이 늘어선 길쭉한 모양이 특징입니다.

자, 실험 시작! 온도계 숫자에 숨겨진 드라마
드디어 실험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팔미트산을 가열하면서 고체에서 액체로 모습이 바뀌는 순간, 즉 상태 변화 순간의 온도 변화를 자세히 관찰하는 거예요. 교과서에서 봤던 그 ‘융해 그래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재현해 봅시다.

사용 기구 및 준비물

수업 시간에 실험할 경우 필요한 기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팔미트산 (소량만 있어도 OK! 안전하고 다루기 쉽습니다)
• 시험관 (또는 작은 비커)
• 온도계 (디지털/아날로그 모두 가능)
• 가열 장치 (물, 핫플레이트 등)
• 타이머
• 스프레드시트 또는 그래프 기록 용지 (학생용)

기구는 아래 그림과 같이 조립합니다.

팔미트산이 액체로 변하는 온도인 **’녹는점(융점)’**은 **62.9°C**입니다. 바로 이 온도를 기점으로 놀라운 드라마가 펼쳐지죠.

실제로 가열해 보면…

• 60°C 근처가 되자, 어? 어쩐지 온도가 오르는 속도가 느려지네…
• 하얀 고체가 점점 투명한 액체로 변하고 있다! 온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 채로!
• 전부 액체가 된 순간, 온도가 다시 쏜살같이 상승하기 시작!

눈앞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분명 모두가 “와!” 하고 탄성을 지를 거예요. 교과서에 그려져 있던 그래프가 현실의 현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이니까요. 이번에는 기록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그래프로 만들었습니다. 여기가 기록용 파일입니다.

성공의 열쇠는 ‘미지근한 물’에 있다!
이 감동적인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려면 사실 아주 작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바로 **’가열하는 방법’**에 따라 실험의 성패가 크게 갈리기 때문이죠.

찬물에서부터 가열했을 경우

예시)


→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수업 시간 내에 녹는점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뜨거운 물(고온)에서 가열했을 경우
예시)

→ 너무 빠르다! 온도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나 온도가 멈칫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미지근한 물(약 30°C)에서 가열했을 경우
→ 이것이 베스트! 온도가 완만하게 올라가기 때문에 상태 변화의 드라마를 여유 있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왜? 온도 상승이 ‘제자리걸음’ 하는 미스터리
실험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동안 계속 가열을 하는데도 온도가 거의 오르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현상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열쇠는 바로 **’잠열(latent heat)’**에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숨어 있는 열’이라는 뜻입니다. 고체는 수많은 분자들이 꽉 잡고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 열이라는 에너지를 가하면, 분자들은 부르르 떨며 진동을 시작하고 온도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녹는점에 도달하면, 주입된 열 에너지는 더 이상 온도를 올리는 데 쓰이지 않고, 분자들이 서로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태 변화’의 정체입니다.

모든 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액체가 될 때까지, 열 에너지는 오로지 이 **’손을 놓게 만드는 작업’**에만 집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도계 눈금은 올라가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분자가 손을 놓고 완전히 액체가 되는 순간, 열 에너지는 다시 분자들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일로 돌아가고, 온도는 다시 상승을 시작하는 것이죠.

이것은 얼음이 물로 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을 아무리 가열해도 다 녹을 때까지는 계속 $0\text{°C}$를 유지하죠? 그것 역시 얼음 분자가 **’잠열’**을 이용해 물로 변신하는 중이기 때문이랍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실험은 팔미트산을 단순히 가열하는 과정이었지만, 그 안에는 **’상태 변화와 잠열’**이라는 중학교 과학에서 배우는 아주 중요한 원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온도계의 숫자가 느려지는 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세계에서 열 에너지가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발견은 이론과 현실이 딱 맞아떨어지는 최고의 배움의 경험이 될 거예요.

혹시 집에서 자유 연구 등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미지근한 물에서 시작!”**을 구호로 삼아 주변 물질의 온도 변화를 관찰해 보세요. 분명 과학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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